상설전시 유년기와 청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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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되어있습니다. 어머니의 무릎에 안긴 꼬마 임권택, 정창화
감독 밑에서 조감독 일을 하던 청년 임권택을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 청년 임권택의 생존과 역정
임권택 감독은 1936년 전라남도 장성읍 단광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출생하여 월평초등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해방 이후 그의 가족은 치열한 좌우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무너진 가세에 좌절하던 임권택은 광주 숭일중학교 3학년을 중퇴하고 무작정 가출하여 피난지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지게꾼이 되었다. 허약 체질이었던 탓에 지게꾼 일이 힘겨웠던 그는 일자리를 옮겨 미군부대에서 불하받은 군화를 소매상에게 넘기는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휴전이 되자 서울로 간 군화점 일가는 영화사를 차렸고, 그 인연으로 임권택도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1955년 정창화 감독의 <장화홍련전>에 잡부로 들어간 임권택은 <풍운의 궁전>(1956)의 소품 조수, <비련의 섬>(1957) 연출부를 거쳐 <장희빈>(1961)까지 조수 생활을 거쳤고,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하였다.
  • <숭일중학교 3학년 재학당시 소년 임권택(오른쪽)>